각종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심심치 않게 "이 놈의 한국인들은 양은 냄비 같은 근성이 문제야" 라는 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 사람도 아닐텐데 스스로에게 누워서 침 뱉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냄비 근성이라는 말에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냄비 근성이 있다는 것을 공감하면서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은근히 말을 하더니 결국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에서 살기가 싫어진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그런 냄비 근성 없으면 스트레스에 눌려 죽으란 얘기도 하는데 저는 이쪽 말이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억에 집착하고 그것에 사로 잡히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거나 결국은 죽음을 택하는 방법 밖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급히 말하지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아래와 같은 상황은 똑같거나 매우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런데 이 냄비 근성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수준이 되었는지는 참 어렵습니다. 그 보다는 그 말을 쓰는 자체가 대부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대부분 남들의 행태에 냄비스럽다고 하는 것을 보건데 남이 잘 되는 일은 죽어도 못 보는 심리가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일에 단기적으로라도 강도 높게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관심 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냄비 근성이 싫다고 말하는 그 분 역시도 그럴때만 냄비 근성에 대해 비난하는 냄비성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무슨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주제를 벗어나 무의미한 냄비 근성 토론으로 내용을 흐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서로 니가 냄비다 아니다 나는 냄비가 아니라 진지하게 걱정하는 것이다. 결국은 냄비라는 의미 하나 때문에 삼천포로 이야기가 빠지고 전체적인 토론의 수준이 급격히 저하되고 결국에는 서로 지쳐서 토론이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냄비 근성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처음으로 사용했을까가 궁금해 집니다. 그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꼭 우리나라만은 아니고 외국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세계적으로 비슷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느 하나 정확히 이거다 하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나라 국민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은 아니란 것이고 이는 불순했거나 불순하지 않았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 입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이 말 역시 오래 들어본 기억은 없으니 뼈대 있는 용어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게다가 좀 유식한 척 하시는 분이라면 한번씩 국민성 비판하는 글들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왜 누워서 침 뱉기 식으로 글을 쉽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 보다 훨씬 유익하고 건전한 방법으로도 반성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데 그 얕은 생각의 깊이에 조롱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냄비 근성이라고 매번 다투는 이유는 그것이 기억에 남아 있고 유사한 일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급격한 여론이 생성됩니다. 그리고는 이내 다음 여론으로 이동을 합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 봐야합니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그대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공통적인 주제가 없는 순간 그 여론은 조각으로 나뉘어 각자의 관심사에 대한 작은 여론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냄비스럽다고 표현해야 하는게 맞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처음 발생한 사건 보다 다음에 발생한 사건이 더 충격적이거나 더 공통적인 이슈라면 충분히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게다가 처음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낼 만큼의 시간이 흐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이동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흐름을 가지고 냄비 근성이라고 한탄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아쉽습니다. 일관성 있게 나가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관성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다소 유연성이 부족할때가 있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그 일관성 보다는 계속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 제시의 유연성 즉, 여론이 중요합니다.
물론 항상 여론이 움직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특정 집단이 의도적인 행동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일들은 매우 불쾌하고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대기업 비리 사건이 터지고 나서 있었던 기부라고 했던 행위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그 의도적인 행동은 소수의 판단에 영향을 흔들리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흔들림이 조금씩 퍼져 나가면서 결국은 여론의 분열이 일어나고 문제의 원점이었던 비리에 대한 여론은 소수가 되어 묻혀집니다. 이런 식으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의도적인 조작을 계획하는 특정 집단에게 있으며 우리가 냄비 근성이라고 한숨 짓는 일은 결국 국민성이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서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정 집단의 계획은 항상 더러운 돈도 가리지 않고 노리는 일부 언론 매체에 의해서 더욱 더 규모가 커지게 됩니다. 뻔히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에 동조되어 버린 사람들의 영향까지 합세하게 되면 여론은 흐려지고 분열되어 사회적인 공감대로써의 힘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불순한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미끼를 던지면서 국민들을 냄비 근성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게끔 합니다.
그 방법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시각과 청각적 요소가 섞여 있는 방송매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이나 말로써만 이야기를 듣게되면 사람은 어느 정도 판단을 하기가 수월해집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시각적 자료를 접하게 되는 순간 사람의 판단은 보다 복잡하고 다양해지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굳이 방송매체의 뉴스 시청이 과연 청소년에게 권장할만큼 건전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신문사 역시도 각각의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잘못 접하게 되면 개인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사실만을 걸러내고 자신의 판단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건들에 있어서 최초 접근은 시각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이 글에서는 냄비 근성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냄비 근성이라 말하는 성향을 만들어 내고 지속적으로 현혹시키는 불순한 의도에 대해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토론을 좋아하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여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다소 의도적인 작전에 휘말리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어떤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소수의 의견으로 변하고 매장당하기 때문이지 결코 국민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국 멀쩡한 사지와 정신을 가지고도 눈 앞에 많은 문제들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답답한 일들이 많이 겪고 있는 우리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 여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결코 냄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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