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2 03:15

♡사랑의헌혈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조회해 보니 내 나이 26 현재 12회의 헌혈을 했다.

스무살 이전에는 헌혈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걸로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던 광운공고는 1호선 성북역과 석계역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아침에는 성북역을 통해 등교하고 하교 길은 주로 석계역을 이용했는데, 바로 헌혈의 집이 그 석계역 입구에 있었다. (6호선 들어선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다.) 항상 학교 마치고 잘 놀고 집으로 갈때마다 애써 않하겠다는 나를 잡는 아주머니들이 너무 짜증이나서 헌혈의 의의는 둘째치고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싫어서 어떻게 하면 한방에 뿌리칠까, 어떻게 하면 안 마주치고 지나갈까만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헌혈을 하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회사에서 일을 했고 병역미필인 내가 어찌하여 회사에서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정말 병역미필자는 해외여행 가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연대 보증인이 2인이 있어야 하고 병무청에 가서 제출하는 서류도 만만치 않았었고 공항에서도 따로 신고를 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래도 태어나서 첫 해외 경험을 쌓는다는 기쁨 하나로 열심히 서류 준비하고 병무청으로 향했다. 당시엔 7호선이 익숙치 않아서 1호선 대방역에 내려서 무더운 여름날 30분 가량을 헤매면서 병무청을 찾아갔고 오랜 기다림 끝에 서류 제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처음 대방역을 나서는 때에 헌혈 아주머니가 나를 잡았는데 역시나 난 습관처럼 뿌리치고 갔었고,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그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의례 건네며 지나쳐서 대방역 개찰구에 들어선 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헌혈이 하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생겼다.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다시 돌아가니 그 아주머니는 아까 그냥 간 청년이 다시 온게 희한한지 "어 아까 않한다는 그 청년.." 이란 말만 되풀이했고 난 그저 웃으면서 "하고 싶어서요" 라고 말을 하고는 바로 헌혈의 집으로 들어갔다.

대방역에 있는 헌혈의 집은 꽤 컸고 오래된 1호선의 이미지와는 달리 (역사 근처에 있었다.) 너무 깨끗하고 좋은 곳이었다. 병원 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정말 편히 쉰다는 느낌이었다. 무한정 마셔도 되는 탄산 음료들과 맛있는 다과들을 제공해 주셨는데 시간이 평일 오후라 한산해서 잠시나마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대방역에 있는 헌혈의 집에서 기분 좋은 경험을 마친 이후로 나는 광적인 헌혈 중독 증세를 보였다. (표현이 과격한가) 친구들을 만나는 날에 지나가다 헌혈차가 보이면 내가 말로 달래서 단체 헌혈도 해보고, 친구들과 놀다가 정말 할 일이 없거나 시간이 남는 경우에는 애써 근처 헌혈의 집을 찾아가서 헌혈을 즐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짓이지 싶다.)

그렇게 좋아했으니 군 생활하면서도 단체 헌혈시에 헌혈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유도해서 첫 헌혈의 경험을 많이도 심어준 일들도 기억에 남고 제대 후 한달쯤 지나서 헌혈 가능 날짜가 오자마자 헌혈을 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헌혈이 내 피만 뽑는다면 참으로 낭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헌혈 후 헌혈자에게 제공하는 맛있는 뽀또 크래커와 포카리스웨트는 이상하게 돈 주고는 잘 안 사먹게 되는데 그곳에서 먹는 그것의 맛은 정말 세상에서 최고의 즐거움이다. 게다가 영화티켓이나 스포츠타월 등등 남도 돕고 자기도 즐거워질 수 있는게 너무나 많은 것이다. :)

헌혈 자체에 너무 큰 기쁨이랄까, 돈으로 하는 기부는 내키지 않고 사회적 능력으로는 아직 돌려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에게 나의 피는 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큰 활력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글을 보시고 아직도 헌혈을 막연히 꺼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가까운 곳에 있거나 기억에 남는 헌혈의 집을 한번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엔 막연해서 가보지 않은 길이 훗날 후회를 하며 걸어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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